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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켈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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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소개

1881년 프라하에서 태어나 90세를 넘긴 1973년 버클리 오린다에서 사망했다. 20세기의 가장 주목받는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 특히 헌법, 국제법, 법이론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물을 남겼다. 엘리네크(Georg Jellinek)와 같이 오스트리아의 법실증주의 학파에 속하고, 하트(H.L.A. Hart)와 함께 20세기의 대표적 법실증주의자로 분류되며, 『순수법이론(Reine Rechtslehre)』이라는 대표 저작은 세계적인 명성을 남겼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난 켈젠은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에 빈으로 이주한 뒤, 1911년 빈 대학에서 헌법과 법철학을 주제로 교수자격논문을 받게 된다. 1917년부터 빈 대학의 객원교수를 시작으로 대학교수의 삶을 시작했으며, 라우터파흐트(Hersch Lauterpacht)와 그로스(Leo Gross)는 그의 대표적인 제자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정책 부서에 참여했고, 1920년 연방헌법의 작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도 활동했다. 1930년 오스트리아를 떠나 쾰른 대학의 국제법 교수직을 시작했다. 1933년 나치는 그의 민주주의적 성향과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근거로 교수직에서 해임한다.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당시 켈젠을 위해 모든 학과의 교수들이 청원서에 서명할 때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바를 거쳐, 1940년 미국으로 망명해 하버드에 정착했으며, 1945년에는 버클리 대학에서 정교수에 임명된다. 오스트리아 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되었지만 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57년까지 버클리 대학 정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3년 4월 19일 심장마비로 파란만장한 짧지 않은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은 태평양에 뿌려졌다. 철학적으로 마부르크 신칸트주의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켈젠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유명 대학에서 11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았다. ‘정신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라는 자명한 가치는 켈젠의 삶과 학문적 고뇌의 중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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